육성필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자살은 극심한 스트레스…위기관리 전문가 더 많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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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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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6-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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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위기심리협회 초대 회장, 위기관리 전공 창설자
“위기는 삶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돕는 일도 가능해”
국내에서 자살예방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육성필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위기관리전공)는 위기를 ‘삶의 한계치에 도달한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자살’이라는 금기어에 가까웠던 단어를 한국 사회에 꺼내놓고, 위기 개입과 관리라는 학문적 체계를 뿌리내리게 한 그는 최근 한국위기심리협회를 창립하며 그 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위기를 학문으로서 다루는 유일한 전공을 만든 사람, 그리고 수많은 실천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사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위기관리 전문가이자 위기심리학자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육성필 교수는 최근 파이낸스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자살이라는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육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자살 예방, 심리적 외상, 위기개입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경험을 쌓아온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그를 만났다.
자살을 이해하려면, 그 안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야 한다
육 교수는 학부 시절부터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며 자살의 원인과 심리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자살과 관련된 연구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다. 돌파구는 박사후 과정을 위해 떠난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찾았다. 그는 세계적인 자살예방 권위자인 폴 퀴넷 박사를 만나 본격적인 자살 연구를 시작했다.
“정신병리를 가진 사람들만 자살 위험군이라고 보는 관점은 너무 좁아요. 실제로 연구와 현장 경험을 통해 자살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국방부, 경찰청, 교육부 등과 협업하며 자살예방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실무자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이후에는 정책 개발과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위기관리 전공, 한국 최초로 만들다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에서 ‘위기관리전공’을 창설하게 된 이유 역시 그의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주제를 깊이 파는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육 교수는 학교에 부임하면서 “임상심리 강의는 하지 않겠다. 위기만 전담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렇게 한국 유일의 ‘위기관리’ 전공이 시작됐다. 현재는 자살, 애도, 가정폭력, 범죄피해, 재난, 테러 등 다양한 위기 주제를 포괄하며 확장되고 있다.
위기상담은 일반 상담과는 다르다
“위기상담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급성의 현실화된 문제를 먼저 다룬 후, 필요하다면 내면의 문제를 다뤄야 하죠.”
일반 상담이 개인의 성장 배경과 심리 역동을 주로 다룬다면, 위기상담은 내담자가 ‘지금 당장’ 호소하는 욕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육 교수는 위기상담을 위한 별도의 교과서, 훈련, 실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생존자들, 살아 돌아왔지만 삶은 무너졌다
육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와 이후의 사례를 언급하며, 자살 위험은 참사의 당사자뿐 아니라 생존자, 구조자, 심지어 관계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진다고 설명했다.
“당시 구조 현장에서 활동했던 한 장병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구조 과정에서 심한 대리외상에 시달렸고, 시간이 지나도 악몽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네 번째 시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육 교수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자살은 단지 개인적 불행이나 정신질환의 결과로 보아선 안 된다”며, “재난이나 트라우마 사건 이후 초기 골든타임에 적절한 심리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위기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전문적 개입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살을 직접 물어보는 게 오히려 예방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자살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오히려 자살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그러나 육 교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자살을 고민 중인 사람은 이미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직접 자살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행위는, 그 고통을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첫 번째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살은 시도에서 실행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은 만큼,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 신뢰관계를 쌓고 난 뒤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위기 상황에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묻고, 바로 개입해야 합니다.”
위기관리 전공, 어디에 진출할 수 있나
“경찰청, 국방부, 청소년상담센터, 복지관, 기업상담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어요. 특히 개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자살과 위기 개입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기관이 늘어나면서, 위기관리 전공자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육 교수는 “수련 과정에서 위기관리에 대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한다면 경쟁력 있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2025년부터는 한국위기심리협회 주관의 민간 자격증 제도도 본격 추진된다. 위기 현장을 제대로 이해한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교육, 이제는 제도화할 때
육성필 교수는 자살 예방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의 필요성을 말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생명존중 교육, 그리고 ‘게이트키퍼(Gatekeeper)’ 교육이죠.” 그는 자살 예방 교육의 출발점을 주변 사람의 변화나 이상 징후를 감지해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이들의 역할이야말로 위기 개입의 첫 단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위기 대응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 자격 체계다. 육 교수는 “미국에서는 석·박사를 마친 사람조차도 다시 400~500시간에 이르는 자살 예방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며 “그만큼 실질적 전문성 확보가 중요시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QPR 프로그램이나 24시간 집중 워크숍, 임상심리학회 중심의 교육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국가 자격제도와의 연계는 아직 부족하죠.”
현장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자살 예방이나 위기심리 관련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실제 상담사나 공공기관, 대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엔 군, 경찰,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상담사를 채용하는 주요 이유로 ‘자살 예방’이 꼽히기도 한다.
“저희 학생들 중엔 2급 자격증이 없어도, 자살 예방 분야의 전문 교육을 이수했다는 점만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수요는 높은데, 제도는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육 교수는 “자살 예방은 더 이상 민간의 자발적 노력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제도화와 지속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단발적인 프로그램을 넘어서, 이 분야가 하나의 전문 직업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제도화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그리고 게이트키퍼
육 교수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1990년대 후반,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 탓으로 돌리는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사회 안전망과 정신건강 체계 붕괴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이후 자살예방센터 설립, 자살예방법 제정 등으로 이어졌다.
“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게이트키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교육의 필요성과 개념 정립,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금은 전국민적인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게이트키퍼는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조기 발견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단순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과 고통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청소년상담사 교재에도 자살과 자해 관련 교육이 포함되는 등 시스템이 정착돼 가고 있다.
위기관리, 사람에 대한 사랑이 먼저
“위기를 마주한다는 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에요. 그만큼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죠.”
위기관리 전공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육 교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는다. 드라마틱한 사건들에 이끌려 시작하지만 실제 현장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람을 돕고, 자신도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은 다양한 위기의 종착점… 통합적 위기관리 필요
육 교수는 자살을 다양한 사회적 위기의 종합적 결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경제적 어려움, 중독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자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 위기를 개별적인 문제로만 다루고, 자살은 그와 별개로 취급해왔습니다. 하지만 자살은 그 모든 위기의 끝에서 나타나는 최종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 개입도 개별 사건이 아닌, 통합적 대응 시스템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통합 컨트롤타워 구축, 심리적 지원 인력의 양성, 법·제도적 지원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육 교수는 대학에서 위기심리학, 자살학, 트라우마 개입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병원, NGO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지켜주지 못한 생명에 대한 책임의 부재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사회, 진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기를 조기에 인식하고 개입하는 사회적 감수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한국위기심리협회 계획
“팬데믹 같은 재난 상황 이후 3~4년이 지나면 자살이 폭증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해요. 그 사각지대를 메꾸는 게 우리의 역할이죠.”
2024년 3월, 육 교수는 한국위기심리협회를 창립하고 위기심리지원단을 출범시켰다.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필요와 계획이 있다면?
위기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이 겪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점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전문 인력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적으로 인정받고 공인된 형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들이 반드시 개입할 수 있는 구조적·제도적 세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재도 다양한 기관과 전문가들이 위기 상황에 개입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비공식적이거나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위기 대응을 공식적으로 공론화하고, 법적 규정을 통해 제도화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기 대응팀’이라는 법적 체계가 마련되어 경찰, 의무요원, 소방, 위기심리 전문가가 하나의 팀으로 반드시 함께 활동하도록 한다면, 훨씬 더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기 대응이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기관리 전공에 진학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위기관리 전공을 준비한다는 건,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려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을 감당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는다는 건, 그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하려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자질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위기관리라는 전공은 아직까지 대중적이진 않아요. 하지만 극적인 상황이 많고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다루는 분야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도전해보려 합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자신에게 큰 책임과 집중을 요구받기 때문에 막상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해병이 아니”라는 말처럼, 쉽지 않기에 더 의미 있고, 그만큼 얻는 보람도 큽니다. 위기관리 전공은 다른 학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깊은 인간 이해와 성장을 함께 가져다줍니다. 누군가를 돕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성장하는 아주 가치 있는 여정이 될 거예요. 그런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면,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이 분야에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자의 한마디 : 한 사람의 길은 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 길 끝에는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은 발자국처럼 그의 그림자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뒤따라 온다. 시간속에 머금은 삶의 현장은 깊은 궤적에 에둘러 누군가의 인생에 선명한 지문이 된다. 정말 오랜 시간, 의미 있는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열정이 만들어낸 변화가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삶의 끝이 아니라 위기 너머 한줄기 건네는 희망,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출처 : 파이낸스투데이(http://www.fntoday.co.kr)
“위기는 삶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돕는 일도 가능해”
국내에서 자살예방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육성필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위기관리전공)는 위기를 ‘삶의 한계치에 도달한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자살’이라는 금기어에 가까웠던 단어를 한국 사회에 꺼내놓고, 위기 개입과 관리라는 학문적 체계를 뿌리내리게 한 그는 최근 한국위기심리협회를 창립하며 그 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위기를 학문으로서 다루는 유일한 전공을 만든 사람, 그리고 수많은 실천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사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위기관리 전문가이자 위기심리학자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육성필 교수는 최근 파이낸스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자살이라는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육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자살 예방, 심리적 외상, 위기개입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경험을 쌓아온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그를 만났다.
자살을 이해하려면, 그 안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야 한다
육 교수는 학부 시절부터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며 자살의 원인과 심리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자살과 관련된 연구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다. 돌파구는 박사후 과정을 위해 떠난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찾았다. 그는 세계적인 자살예방 권위자인 폴 퀴넷 박사를 만나 본격적인 자살 연구를 시작했다.
“정신병리를 가진 사람들만 자살 위험군이라고 보는 관점은 너무 좁아요. 실제로 연구와 현장 경험을 통해 자살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국방부, 경찰청, 교육부 등과 협업하며 자살예방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실무자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이후에는 정책 개발과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위기관리 전공, 한국 최초로 만들다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에서 ‘위기관리전공’을 창설하게 된 이유 역시 그의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주제를 깊이 파는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육 교수는 학교에 부임하면서 “임상심리 강의는 하지 않겠다. 위기만 전담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렇게 한국 유일의 ‘위기관리’ 전공이 시작됐다. 현재는 자살, 애도, 가정폭력, 범죄피해, 재난, 테러 등 다양한 위기 주제를 포괄하며 확장되고 있다.
위기상담은 일반 상담과는 다르다
“위기상담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급성의 현실화된 문제를 먼저 다룬 후, 필요하다면 내면의 문제를 다뤄야 하죠.”
일반 상담이 개인의 성장 배경과 심리 역동을 주로 다룬다면, 위기상담은 내담자가 ‘지금 당장’ 호소하는 욕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육 교수는 위기상담을 위한 별도의 교과서, 훈련, 실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생존자들, 살아 돌아왔지만 삶은 무너졌다
육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와 이후의 사례를 언급하며, 자살 위험은 참사의 당사자뿐 아니라 생존자, 구조자, 심지어 관계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진다고 설명했다.
“당시 구조 현장에서 활동했던 한 장병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구조 과정에서 심한 대리외상에 시달렸고, 시간이 지나도 악몽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네 번째 시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육 교수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자살은 단지 개인적 불행이나 정신질환의 결과로 보아선 안 된다”며, “재난이나 트라우마 사건 이후 초기 골든타임에 적절한 심리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위기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전문적 개입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살을 직접 물어보는 게 오히려 예방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자살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오히려 자살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그러나 육 교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자살을 고민 중인 사람은 이미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직접 자살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행위는, 그 고통을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첫 번째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살은 시도에서 실행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은 만큼,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 신뢰관계를 쌓고 난 뒤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위기 상황에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묻고, 바로 개입해야 합니다.”
위기관리 전공, 어디에 진출할 수 있나
“경찰청, 국방부, 청소년상담센터, 복지관, 기업상담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어요. 특히 개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자살과 위기 개입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기관이 늘어나면서, 위기관리 전공자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육 교수는 “수련 과정에서 위기관리에 대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한다면 경쟁력 있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2025년부터는 한국위기심리협회 주관의 민간 자격증 제도도 본격 추진된다. 위기 현장을 제대로 이해한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교육, 이제는 제도화할 때
육성필 교수는 자살 예방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의 필요성을 말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생명존중 교육, 그리고 ‘게이트키퍼(Gatekeeper)’ 교육이죠.” 그는 자살 예방 교육의 출발점을 주변 사람의 변화나 이상 징후를 감지해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이들의 역할이야말로 위기 개입의 첫 단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위기 대응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 자격 체계다. 육 교수는 “미국에서는 석·박사를 마친 사람조차도 다시 400~500시간에 이르는 자살 예방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며 “그만큼 실질적 전문성 확보가 중요시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QPR 프로그램이나 24시간 집중 워크숍, 임상심리학회 중심의 교육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국가 자격제도와의 연계는 아직 부족하죠.”
현장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자살 예방이나 위기심리 관련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실제 상담사나 공공기관, 대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엔 군, 경찰,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상담사를 채용하는 주요 이유로 ‘자살 예방’이 꼽히기도 한다.
“저희 학생들 중엔 2급 자격증이 없어도, 자살 예방 분야의 전문 교육을 이수했다는 점만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수요는 높은데, 제도는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육 교수는 “자살 예방은 더 이상 민간의 자발적 노력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제도화와 지속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단발적인 프로그램을 넘어서, 이 분야가 하나의 전문 직업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제도화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그리고 게이트키퍼
육 교수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1990년대 후반,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 탓으로 돌리는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사회 안전망과 정신건강 체계 붕괴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이후 자살예방센터 설립, 자살예방법 제정 등으로 이어졌다.
“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게이트키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교육의 필요성과 개념 정립,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금은 전국민적인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게이트키퍼는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조기 발견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단순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과 고통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청소년상담사 교재에도 자살과 자해 관련 교육이 포함되는 등 시스템이 정착돼 가고 있다.
위기관리, 사람에 대한 사랑이 먼저
“위기를 마주한다는 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에요. 그만큼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죠.”
위기관리 전공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육 교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는다. 드라마틱한 사건들에 이끌려 시작하지만 실제 현장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람을 돕고, 자신도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은 다양한 위기의 종착점… 통합적 위기관리 필요
육 교수는 자살을 다양한 사회적 위기의 종합적 결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경제적 어려움, 중독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자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 위기를 개별적인 문제로만 다루고, 자살은 그와 별개로 취급해왔습니다. 하지만 자살은 그 모든 위기의 끝에서 나타나는 최종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 개입도 개별 사건이 아닌, 통합적 대응 시스템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통합 컨트롤타워 구축, 심리적 지원 인력의 양성, 법·제도적 지원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육 교수는 대학에서 위기심리학, 자살학, 트라우마 개입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병원, NGO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지켜주지 못한 생명에 대한 책임의 부재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사회, 진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기를 조기에 인식하고 개입하는 사회적 감수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한국위기심리협회 계획
“팬데믹 같은 재난 상황 이후 3~4년이 지나면 자살이 폭증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해요. 그 사각지대를 메꾸는 게 우리의 역할이죠.”
2024년 3월, 육 교수는 한국위기심리협회를 창립하고 위기심리지원단을 출범시켰다.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필요와 계획이 있다면?
위기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이 겪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점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전문 인력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적으로 인정받고 공인된 형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들이 반드시 개입할 수 있는 구조적·제도적 세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재도 다양한 기관과 전문가들이 위기 상황에 개입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비공식적이거나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위기 대응을 공식적으로 공론화하고, 법적 규정을 통해 제도화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기 대응팀’이라는 법적 체계가 마련되어 경찰, 의무요원, 소방, 위기심리 전문가가 하나의 팀으로 반드시 함께 활동하도록 한다면, 훨씬 더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기 대응이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기관리 전공에 진학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위기관리 전공을 준비한다는 건,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려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을 감당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는다는 건, 그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하려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자질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위기관리라는 전공은 아직까지 대중적이진 않아요. 하지만 극적인 상황이 많고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다루는 분야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도전해보려 합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자신에게 큰 책임과 집중을 요구받기 때문에 막상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해병이 아니”라는 말처럼, 쉽지 않기에 더 의미 있고, 그만큼 얻는 보람도 큽니다. 위기관리 전공은 다른 학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깊은 인간 이해와 성장을 함께 가져다줍니다. 누군가를 돕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성장하는 아주 가치 있는 여정이 될 거예요. 그런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면,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이 분야에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자의 한마디 : 한 사람의 길은 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 길 끝에는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은 발자국처럼 그의 그림자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뒤따라 온다. 시간속에 머금은 삶의 현장은 깊은 궤적에 에둘러 누군가의 인생에 선명한 지문이 된다. 정말 오랜 시간, 의미 있는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열정이 만들어낸 변화가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삶의 끝이 아니라 위기 너머 한줄기 건네는 희망,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출처 : 파이낸스투데이(http://www.f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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